백현빈 (마을의 인문학 대표, 화성시 주민참여예산위원장, 서울의소리 '백현빈의 정면돌파' 방송진행자

 

총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구 후보들의 지역 발전 공약이 나오고 있다. 미래 비전으로서 주로 산업 육성과 같은 공약이 돋보인다. 공학 계열의 산업을 키우거나 관련 인재를 육성하는 내용이 많다. 이 지점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지역의 발전,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인문의 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규모의 반도체 관련 투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여러 산업과 기술의 육성, 물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기술 못지않게 그 기술을 진정 사람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공감의 지혜가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산업 현장의 종사자에게도 일과 삶의 균형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돕는 감성의 기제가 필요하다. 이를 채워갈 인문의 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선 인문학을 책장에서 꺼내야 한다. 인문학의 ()’()’이 아무래도 글과 배움과 관련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인문을 책 속의 지식이나 학습 대상에 가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러한 지적 담론은 인문적인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읽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를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철학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술을 느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여기에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 작품 속 다른 사람의 삶이, 역사 속 사건의 의미가, 철학 속에서 보이는 삶의 여러 가치와 대안이, 예술 작품 속 여러 감성과 기법이, 다른 사람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의 지혜와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지역사회의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시민의 수많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기제로서 인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인문학을 문화센터 교양강좌에 가두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지자체에서 적지 않은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프로그램이 시민들에게 정서적 풍요와 만족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 강의 잘 듣고 왔다거나 우와, 감동적이다에서 끝난다면 인문과 인문학 모두 발전의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공학 분야의 산업에 종사하며 그 분야의 방식에 익숙한 수많은 시민이 인문 분야의 낯선 화법에 다가가고 친해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제 인문학,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강의를 몇 회 진행했는가보다는 그 강의로 어떻게 더 많은 시민에게, 더 많은 사회문제에 다가갔는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문학 교육과 문화예술 활동의 산물을 지역에 계속 흐르는 콘텐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 삶의 고충과 지역의 문제에 인문적 처방을 내릴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인문의 힘이 제대로 빛날 수 있다.

인문학이 좋은 것도 알겠는데, 인문학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도 공감하는데, 어떻게 할지 여전히 막막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정량화가 어려운 분야라 더욱 그럴 수 있다. 감동을 어떻게 계량할 수 있겠는가. 지역마다 사람마다 적절한 인문적 처방은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마을의 인문학> 대표로서 지역과 사람을 위한 여러 인문학적 솔루션을 현장에서 제시하면서도 일반론을 펼치기는 늘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우선 도시 경관의 개선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공공디자인 활성화로 도시의 시설물 하나하나는 예뻐졌지만, 도시 전반에서 시민의 일상에 지속적인 감동과 의미를 주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벤치에서 가로등, 버스정류장에서 소공원, 근린공원, 놀이터, 광장, 건물 등으로 이어지는 모든 공간을 이야기로 연결하는 경관디자인이 필요하다. 주민이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감동은 이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자가 주민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시민과 시민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피로를 줄여가는 데에도 인문학적 전략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모든 분야의 산업이 시장에서 더 경쟁력을 갖고 소비자의 선호를 받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하는 과정에서도 인문학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을 하나의 인문 산업(humanity industry)’으로 엮어갈 수 있다면 이 또한 경쟁력 있는 분야가 되리라고 본다.

저성장 시대, 우리 안에는 불안과 갈등, 그리고 공허가 있다. 현재의 재정여건 속에서 산업의 규모를 무조건 키워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정면돌파할 인문의 대안이 필요하다.

필자는 사람과 사람, 산업과 산업, 문제와 해결을 잇는 인문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일상에서부터 계속 실현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화성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