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이사)

 

얼마 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한 죽산순교성지를 찾았다. 죽산순교성지는 병인박해(1886) 시기에 일대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던 현장이다. 과거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주둔한 곳이라 해서 이진 터라 불리기도 했는데, 박해 시기에는 이곳에 가면 죽은 목숨이니 잊은 터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1) 안성 죽산순교성지

 

그런데 죽산순교성지의 의미를 더하는 장소가 인근에 있는데, 바로 옥사 터이다. 과거 죽산도호부의 관아는 현 죽산면사무소 일대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던 이유도 관아의 옥사에 갇혔다가 지금의 죽산순교성지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순교 성지의 분포를 보면 인근에 관아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죽산면사무소 입구에는 옥사 터와 관련한 조형물과 안내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2) 안성 죽산면사무소의 입구, 옥사 터에 설치된 조형물과 안내 표지석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면서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남양성모성지다. 남양성모성지는 과거 남양순교성지로 불렸는데, 병인박해 시기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했던 현장이다. 다만, 이곳에서 처형된 천주교인들 중 이름이 밝혀진 이는 김 필립보, 박 마리아 부부와 정 필립보와 김홍서 토마 등 4명뿐이다. 이처럼 남양성모성지가 순교지인 것은 인근에 있었던 남양도호부의 관아를 통해 알 수 있다.

 

사진3) 화성 남양성모성지, 순교성지임을 알려주는 흔적

 

남양도호부는 고려 충선왕 때 남양부(南陽府)가 설치되었고, 이후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에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남양도호부의 상징적 공간이 관아로, 지금의 남양초등학교와 보훈회관 일대에 있었다. 다만, 현재 관아와 관련해 남아 있는 건물은 남양 풍화당(風化堂)이 유일하다. 이러한 남양도호부 관아와 남양성모성지가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양성모성지는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화성시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손꼽힌다. 이러한 남양성모성지와 남양도호부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앞선 죽산순교성지와 옥사 터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양도호부 관아 건물의 대부분은 사라진 상태이기에 옥사 터로 추정되는 장소에 상징물과 조형물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남양성모성지를 찾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남양도호부 관아를 찾고, 흔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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