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우리가 귀중하게 여길것은 진실성 뿐

글/이판도 (봉담 마을계획단 공동체 분과장)

편집국 | 기사입력 2019/10/11 [18:08]

[특별기고]우리가 귀중하게 여길것은 진실성 뿐

글/이판도 (봉담 마을계획단 공동체 분과장)

편집국 | 입력 : 2019/10/11 [18:08]

▲ 이판도     © 편집국



<3.1 백주년 기념 독립운동 순례에 다녀와서>

 

“우리가 귀중하게 여길 것은 진실성 뿐이네. 진실로 참다운 성실이 있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외세에 겁내지 말라, 조국은 반드시 되찾는다.” 석주 이상룡 선생께서 만주 땅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후손들에게 남긴 말이다.


올해는 3월1일 독립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달 20일 1박 2일에 걸쳐 수원대 이원영 교수가 기획하고 진행한 <3.1백주년 독립운동 순례>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날은 천안 독립 기념관, 경주 최부자종택, 밀양 의열기념관, 대구 국체보상운동기념관과 2.28민주광장과 영남대 비리 척결을 위한 촛불시위대와 연대하는 열정적인 일정이었다.


민족의 존경받는 부자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인 경주 최부자 종택은 고운 최치원선생, 최진립 장군의 이름과 함께 수신과 행동지침에 대한 철학으로 300년 넘는 세월동안 귀감을 보여온 가문이다. 일제 치하에는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독립자금을 대었고 해방 후에는 민립 (구)대구대학 설립을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유례없는 ‘깨끗한 부자’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마침 그 일을 위해 설립한 백산무역도 올해가 100주년이다. 뜻깊은 해다.


3.1운동 백주년 기념투어단을 맞이 하느라 서울서 내려오신 11세주손 최염 선생(경주최씨중앙종친회 명예회장)과 12세 주손 최성길 변호사를 만나뵈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는 개관 기획전으로 경주 최부자의 독립운동 자료를 10월13일까지 전시한다.


이어 방문한 밀양 의열기념관은 약산 김원봉의 생가터에 세워졌다. 초기 약산선생의 고모부인 황상규 씨가 주도하여 십여명으로 출발한 무력결사조직인 의열단은 신흥무관학교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국내외에서 항일무력투쟁을 해온 독립운동의 상징이다. 나중에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통해 배출한 대원이 합쳐져 체계적인 독립운동 단체로 커졌다.


옥상에 올라가니 조선희의 작품 ‘세 여자’에 나오는 윤세주의 생가가 보인다. 밀양시에서 매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밀양은 쇠귀 신영복선생이 태어난 고장으로 그 정신적 연유를 거슬러 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근 수십년간 선거 때마다 민주진영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대구지역이지만, 대구의 진짜 정체성은 무엇일까? 대구에서 시작하여 한국최초의 거국적 시민운동이 되었던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은 올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저녁 8시에 예정된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2.28기념 민주광장에 도착하니 ‘영남대바로잡기’를 염원하는 촛불집회가 밤을 밝히고 있었다. 2.28 광장은 3.15 보다 앞서 이승만의 독재타도를 외친 의로운 대구시민을 기념하는 곳이었다.


이 집회는 영남대 교수회와 동문 및 뜻있는 지역민들이 사학비리를 척결하고 경주최부자의 독립정신을 되살리자고 외치는 촛불이었다. 이곳에 와서 민립 (구)대구대가 영남대라는 이름으로 친일 부역자 박정희 일가의 소유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를 알게 되었다.


우리 일행도 함께 촛불을 들었다.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광장의 경험, 촛불의 경험이 연대의 힘을 믿게 하고 민주를 실현하는 장이 아닌가? 그리고 대구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고장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 전태일 생가 매입을 위한 시민모금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독립운동 100주년 순례답게 열정적인 피날레로 첫날여정을 마쳤다.


순례 이틀째는 안동지방 투어다. 먼저 방문한 오미마을은 독립운동가 8명이나 추서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안동대 사학과 강윤정교수님이 오셔서 독립기념공원에 새겨진 투사들의 이력과 한분 한분의 생가를 알려주었고 이어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의 내용을 옛 이야기처럼 풀어주었다.


변호사였다가 1920년대 만주지역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해온 김응섭 의사와 의열단원으로서 일 왕궁에 폭탄을 투척한 김지섭의사도 이 마을 출신이다.
뒤이어 방문한 병산서원은 징비록의 저자이자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서애 류성룡선생을 모셔놓은 서원이다. 서원은 지금의 대학 같은 곳으로 우리나라 서원의 백미이다. 서애선생의 종손인 류창해님이 직접 환대를 해주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설명한다.


가을비가 촉촉한 가운데 만대루 위에 올라가 낙동강을 내려다 보며 누각에 베인 선비의 정기를 음미하려니 옛스러움이 그윽하게 밀려왔다.


이어 이번 순례의 대미는 독립운동의 대들보 석주 이상룡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이다.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되고 큰집이자 500년된 고택으로 보물182호로 세계적인 건축이라 일컬어진다.

 

원래 99칸이었던 집을 일제가 철로를 일부러 돌려 30칸을 소실하게 만들었다. 안동양반들이 벼슬보다 명예롭게 여긴 유향좌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선비의 가문으로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종손인 이상룡선생은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고 노비문서를 불태워 하인들을 풀어주고 50여 가구를 이끌고 만주로 떠났다. 만주서 돌아가실 때까지 여생을 독립운동에 바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으로 추서되었다.


임청각 일가에서 9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으며 아들은 고국에 돌아와서 일제의 탄압으로 자결하고 손주는 감옥에 가고 99칸 위용의 임청각의 80후손께서 어린시절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하니 독립군 가족의 수난은 우리 가슴을 참 아프게 한다. 선조의 자료를 찾아 해독하고 정리하는 후손을 보면서 집안의 정신은 피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라 느낀다.


한 마을에서 또 한 집안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된 것을 보면 선비가 읽어낸 인간 본연의 자존과 기개, 의로움이 독립운동의 근간이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이전투구의 이면에 우리 민족의 어른에게서 이도록 높은 인간자존의 윤리를 발견하다니. 그 고결한 정신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해서 다시금 광장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싶다.
식민사관을 청산하라! 일제 기득권을 청산하라! 이 난잡한 시국을 이겨내고 조상의 정신적 고결함을 세계 만반방에 펼쳐야 하리라.
석주 이상룡 선생이 말씀을 다시 깊이 새긴다.

“진실성 뿐이네! 참다운 성실이 있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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