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자문위원 김중원   © 편집국

남자들끼리 모여 술 한 잔 마시면 으레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저마다 좋은 보직을 받아 편하게 지냈다고 자랑하지만 군인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었을 것이다. 

필자도 훈련소에서 겪었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군 훈련은 대체로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로봇 같이 완전군장에 집총을 하고 드넓은 연병장을 한 시간 이상을 뛴다. 특수 훈련장에 낮게 쳐진 철조망을 배로 기어서 빠져나가는 동시에 좌, 우로 구르기를 수십 번한다. 그리고 연병장을 낮은 포복으로 몇 차례 왕복하면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교관이 우리를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눕혀 놓더니 갑자기 노래를 하란다. 

‘군가는 어머니 마음,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교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건장한 청년들은 큰 소리로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이 첫 소절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더는 잇지 못하고 연병장은 일순간 울음바다가 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눈물 콧물 쏟으며 엉엉 울었다. 그날 밤, 평소에는 소등과 동시에 코 고는 소리로 요란스럽던 내무반은 밤늦도록 훌쩍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군은 의무이고 훈련이 강해야 정예 군인이 된다지만 춥고 배고픈 훈련장에서 고된 훈련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혼에 지치면 그때서야 부모님이 20여 년 지켜준 그 모진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남자는 군에 가야 사내가 되고, 효자 된다고 했던 것 아니겠는가?

지난 4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현역 군단장이 굉장히 비합리적인 부대 운영과 지휘, 명령으로 수많은 젊은 군 장병들을 고통받게 하고 있다. 군단장은 특급 전사만을 강요하며 특급 전사 기준에 미달하면 포상 휴가는 물론 외출, 외박도 제한하고 있으며, 행군이 불가능한 수준의 아픈 장병에게도 행군을 강요한다.’면서 그 군단장 해임을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요즘 청와대 청원이 그 본 뜻을 벗어나거나 특히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 청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군의 교육 훈련과 관련하여 군 지휘관 해임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 청원 내용의 진위를 떠나 국가 안보 차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많은 국가 중에서 강한 훈련으로 정예 병사를 만들겠다는 군 지휘관을 해임해달라는 국민은 우리나라 말고 또 있겠는가? 국가의 안전을 생각하는 건강한 국민이라면 우리 군대의 전투력 증진 훈련을 여론으로 재단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휴전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군의 기본 업무인 전투력 증진 훈련마저 여론으로 휘두르려는 행태는 우리 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이런 형태로 군 지휘관의 훈련 방식이 공론화되고 이것으로 인해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다면 지휘관들은 막말로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장병과 그 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지 않고 모두 ‘쉬어!’ 하지 않겠는가? 

결국 군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고 이 군으로 나라를 어떻게 지키며, 국민은 두 다리 펴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우리는 조선 선조 때 10만 양병으로 유비무환 하자는 율곡의 상소를 무시하다가 그로부터 10년 후 일본의 침략을 받게 되고 그 임진왜란 7년으로 나라가 초토화된 역사를 기억한다. 

그렇다. 국제사회는 동서고금을 통해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었고 좌우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선진국이란 행복 또한 강군만이 보장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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