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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위치를 찾지 못한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
김희태 화성저널 객원기자
 
편집국 기사입력 :  2017/01/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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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에 자리한 동탄복합문화센터의 야외음악당에는 낯선 석불입상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름은 오산리에 있었다고 해서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이다. 사찰에 있을 법한 이 석불입상이 어떻게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석불입상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보고자 한다.

 

▲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의 전경     © 편집국

 

동탄면사무소 앞에 있던 석불

 

동탄에 사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과거 이 석불입상이 동탄면사무소 앞에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석불입상은 지금과 달리 갓모양의 관이 분리된 형태로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후 동탄신도시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분리된 갓 모양의 관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얼핏 석인상으로 보이지만 목에 부처를 상징하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가 있어 부처인 것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미륵불이면서 서서 있는 입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언가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연꽃 내지는 약함으로 추정된다. 약함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단을 보면 전체적인 석불입상과는 달리 색이 틀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한 동안 흙에 묻혀 있었던 흔적이다. 석불입상의 상태를 볼 때 하단 부분의 일부는 흙에 묻힌 채 서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광통교의 박석에 보이는 인물상, 이를 통해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의 연대를 고려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하고 있다.     © 편집국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만들어진 듯

 

이 석불입상이 최초 위치가 어디인지는 확인하기는 쉽지가 않다.

 

보통 사찰에 있어야 할 석불입상이지만 언제부턴가 동탄면사무소 앞에 서 있었던 것을 봤을 때 폐사지가 된 사찰에서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석불입상이 만들어졌을 시기는 고려 공민왕릉의 석인상과 청계천에 위치한 광통교의 박석에 새겨진 인물상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고려가 망한 뒤 새로 세워진 조선사회는 숭유억불을 국시로 했던 만큼 많은 사찰이 폐사지의 운명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이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이 있었을 사찰 역시 이 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일제강점기에는 이 같은 폐사지의 석등과 불상 등이 일본인에 의해 도굴과 도난이 되면서 경매시장을 통해 뿔뿔이 흩어져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봤을 때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이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상황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세 개의 목주름을 통해 부처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그 의미에 맞다. 하지만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과 같이 시대의 분위기에 제 자리를 잃어버리고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동탄면사무소 앞에 자리하게 된 사연, 그렇게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과 문화재, 그리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를 찾는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을에는 또 다른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과 같은 사례가 없는지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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