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추연신     ©편집국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양의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프레임 정치’가 통할까? 하는 질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주저 없이 통한다고 답을 할 것이다.
정보와 뉴스의 홍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뉴스의 표면적인 내용을 fact로 믿어 버린다. 이런 성향을 누군가 이용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을 지배했던 ‘종북 프레임’ 그리고 ‘친일 프레임’... 이제 그만하고 위정자들은 정책과 실력으로 승부하고 오직 국가를 위해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나 있을법한 당파싸움이 21세기에 되살아나는 한국 사회. 중도는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선택지를 주고 한 방향의 선택을 강요하고, 상대방은 나쁘다고 몰아세우는 그런 정치와 사회 분위기에 지쳐간다.


미디어 환경이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지상파 3사 채널이 전부였고 사람들은 정보를 취득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당시 지배정권은 제한된 정보 소스를 활용해 사람들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종편이 나오고,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는 지배정권의 그런 행위가 통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것이 아직 통한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글자의 책을 읽기 싫어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대립되는 의견을 존중해주고,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가려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좀 더 다양한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길러야 프레임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결국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잃으면 프레임에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한 맹신도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사상과 행동을 보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사람을 지배하는 정권도 원리는 같다는 뜻이다. 그들도 완벽할 수 없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반대당과 비교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도는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 한다”라고 말할 수 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내 생각만 옳고 상대는 무조건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프레임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프레임의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그물은 촘촘하다는 것이다. 고기를 잡아서 그물에 담아 바다에 두면 고기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려하지 않고, 뉴스에서 일부 편집한 영상과 편향적인 보도에 편승해 믿어 버리는 순간 프레임의 그물에 스스로를 가두게 됨을 알자.
​특정 당파에 유리한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교화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프레임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건의 본질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믿는 완벽한 순간은 없다.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지금 당장 용기를 갖고 시도하자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돈이 많이 들지 않는 한, 실패하더라도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가 독자들을 향해 정치권이 반기지 않는 글을 쓰듯이 말이다.
다가오는 총선에는 변혁의 단초가 만들어지길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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