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시IN] 소금쟁이

유강희 시인

편집국 | 기사입력 2019/06/06 [18:08]

[손택수의 시IN] 소금쟁이

유강희 시인

편집국 | 입력 : 2019/06/06 [18:08]

 

소금쟁이
-유강희

 

소금쟁이를 우습게 본 건
나의 실수다
너무 더워 풀밭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물 아래서
작은 물고기가
빠르게 솟구쳤다
옆구리가 은빛 칼날처럼 빛났다
소금쟁이를 잡아먹기 위해
그런 거란 걸 잠시 뒤
난 알았다
순간, 소금쟁이가
점프를 해서
건너편 바위 위에
사뿐히 앉은 것이다
소금쟁이가 그 가는 다리로
힘차게 물을 박차고
자기 몸보다 몇 십 배나 되는
거리를 쉬익 날아서,
새보다 더 우아하고
멋지게 착지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시인 : 유강희
출전 : 유강희 동시집. 「소금쟁이」. 『뒤로 가는 개미』. 문학동네. 2015년.

 


풀밭이 연못으로 바뀌고 화자는 또다른 소금쟁이로 둔갑을 한 것 같다. 나는 소금쟁이의 점프력에 놀라고 그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한 시인의 관찰력에 다시 한번 놀란다. 결정적 순간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누군가에겐 그저 시시한 연못에 지나지 않겠지만 골똘한 시선을 가진 누군가에겐 생명의 사건들로 가득찬 경이로운 장소로 바뀐다.

 

상상력은 두뇌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희미한 것들의 기미를 읽을 줄 아는 마음과 더 관계가 깊다. 가스통 바슐라르였던가. "돋보기를 든 인간은 그냥 친숙한 세계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대상 앞에서 신선한 시선이 된다. 돋보기는 바로 되찾아진 어린시절"이라고 말한 것이. 어린시절의 돋보기를 되찾을 때 우리는 누구나 결정적 순간을 살게 된다.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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