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원 본지 자문위원     ©편집국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라는 편이 맞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예의를 중시하고 인품을 평할 때 판단의 중심은 도덕이다.
그래서 용렬한 인간들은 이 최고의 가치인 도덕을 몰염치하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으려면 도덕적인 실수는 절대 용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선거철이면 발전적인 정책개발보다는 상대방의 도덕적 결점을 찾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면 그리고 고위직에 선출되면 으레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는다. 그러고 나면 방명록에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께 고맙다’, ‘선조의 우국충정을 본받아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적는다.
또한, 일부 정치인 중에는 정치 성향에 따라 누구 묘역에는 가고 누구 묘역에는 안가는 스스로 편협함을 드러내는 옹졸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정치인들은 도덕적인 위장에 선수들이다. 뻔뻔스럽게 자신은 선이요, 정의라 하고 상대방은 악과 불의의 세력, 반민주적, 비도덕적 세력으로 몰아가는 못된 습관이 있다.
지난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제39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그런데 매년 참석했던 구미시장이 참석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의 공과 과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나라를 18년간 통치한 것은 팩트요, 역사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구미공단을 건설하는 등 구미발전에 초석을 놓은 구미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도 그 구미시의 시장이 개인적, 정치적 이념 때문에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공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자기 지지 세력의 비난을 염려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다. 공인은 공적이어야 하고 정도를 가는 것이 맞다. 조금만 더 큰 틀에서 생각하여 추도식에 의연히 참석했다면 그의 지지 세력들도 배신자라고 하기보다는 되레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큰 그릇으로 더욱 믿음을 주지 않았을까?


그뿐만 아니라 눈에 티처럼 껄끄러운 반대 세력을 껴안는, 정치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터인데 그는 명분도, 신뢰도 모두 잃은 최악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한편, 울산시 교육감이 울산의 일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라고 해서 울산 교총과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1968년 12월 남파된 북한 무장공비들은 강원도 외딴 산골에 살던 9살 이승복을 무참하게 살해함으로써 국민의 공분을 샀었다.
한때 이 사건은 정부에 의해 조작되었다며 법원에 고발까지 되었으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11월 대법원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확정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교육감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의 문제’라며 ‘4차 산업 시대에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승복 동상은 자꾸 뒤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철거를 문의했을 뿐 이념의 차원이 아니다’라면서 ‘동상 철거는 각 학교에 맡기겠다’고 했다.


변명이 참 구차하다. 요즘 우리는 위안부 문제로 심기가 불편하다. 우리는 나라 곳곳에 소녀상을 세워 위안부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 울산 교육감은 같은 맥락에서 소녀상도 자꾸 뒤로 잡아당기지 않게 모두 철거하고 앞으로만 나갔으면 좋겠는가?
두고 볼 일은 과연 교육감의 심기를 모른 체할 학교장이 몇 분이나 될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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